역사의 흔적따라

소로리 볍씨는 인류문화생명의 유산 

wowjenny 2014. 5. 31. 15:10

 

 

'세계 最古' 청주 소로리 볍씨 상징물 건립 추진

충북 청원서 세계 최고 벼 출토

 

충북 청원서 세계 최고 벼 출토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 오창과학산업단지 조성 지역에서 발굴된 토탄층의 일부(사진위)와 이 곳에서 출토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벼(사진 아래 유리그릇안)가 16일 공개됐다./(본사자료)/1998.3.16(청주=연합뉴스)//< 저작권자 ⓒ 2006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청주=연합뉴스) 황정현 기자 = 세계 최고(最古)로 알려진 소로리 볍씨의 상징물 건립이 추진된다.  

'청주 소로리 볍씨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는 1일 소로리 볍씨의 고장이 청주임을 알리기 위해 볍씨 모양의 상징물을 세우기로 했다고 밝혔다. 

추진위는 이날 예술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상징물의 크기와 재질, 모양 등을 논의했다. 

 

추진위 공동대표인 강상준 충북대 명예교수는 "통합 청주시 출범에 따라 소로리 볍씨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에서 상징물 조성에 나섰다"라며 "청주시도 건립 계획이 확정되면 내년 예산에 반영,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통보했다"고 전했다.

 

추진위는 소로리에서 나온 고대 볍씨 모양을 그대로 형상화하되 재료는 구리로 하고, 크기는 현장실사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상징물 건립 위치는 발굴 지역인 오창과학산업단지 미래나노텍 공장부지 안이 최적지로 거론됐으나 접근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판단, 인근 4차로 내 녹지공간에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시의 한 관계자는 "추진위가 소로리 볍씨 상징물 건립을 건의, 검토하는 단계"라며 "구체적인 계획안이 나오면 예산 지원 여부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추진위는 소로리 볍씨의 위상을 정립하고, 후속 연구 지원을 위해 지난 5월 출범했다.

 

sweet@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9/01 18:30 송고

 

 

 

 

 

 

소로리 볍씨는 인류문화생명의 유산
[특별기고] 김성훈 내셔날트러스트 창립대표
前 농림부장관
2014년 05월 29일 (목) 22:41:23 지면보기 19면 중부매일 jb@jbnews.com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1만5천~7천년전) 야생 순화 고대미의 볍씨들이 대량 발굴된 유적 현장이 있다. 이제까지 세계 고고학계에 알려진 중국 호남성 옥첨암 동굴의 순화볍씨보다도 최소 3천~4천년전이나 앞선 것으로서 세계 고고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충북대 이융조 교수를 비롯한 고고학계의 피땀 흘린 이 역사적 발굴 성과는 학술적으로 공인됨으로써 벼(쌀)의 학명인 Oryza sativa에 Corea를 부칠까 Sorori를 달까 고민해야 할 단계이다. 소로리의 기적은 이미 영국의 BBC방송을 비롯 국제적으로 널리 보도되었다. 그런데 정작 발굴현장을 가보면 오창산업단지 한켠에 초라한 표지석 하나만 달랑 서 있을 뿐이다.

필자가 UN/FAO (국제식량 및 농업기구)에 근무할 때 중국에 출장을 가면 중국 농업부 관리들은 으레 맨 먼저 "세계 쌀농사의 시원지를 가보셨습니까? 그곳이 우리 중국 호남성에 있는데요"라며 브리핑을 시작한다. 옥섬암 유적지 현장과 저장성 하모도 고대볍씨 발굴 현장부근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현대적 유물박물관과 관련전시물들이 공개돼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은 세계고고학계가 인정하는 소로리 볍씨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지난 3월19일 경기도 고양시에서는 '고양 가와지 볍씨 박물관'이 개관 되었다. 국내 첫 쌀관련 볍씨유물 문화박물관이다. 그 자리에서 고양시 당국은 가와지볍씨 12톨의 브랜드 가치가 무려 6조원으로 평가되고 있다며 고양시민들의 긍지를 만천하에 자랑하였다. 필자는 그 자리에 초청을 받고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것은 청주·청원 각계 지도층들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다.

소중한 자연 문화유산을 국민신탁으로 영구 보전 발전시키자는 세계적 범시민운동인 내셔날트러스트에서도 마땅히 소로리 볍씨의 항구적인 보전 관리와 범세계적 문화유산화에 관심을 누차 표명하고 중앙·지방당국에 대하여 지원을 촉구한바 있다. 요컨대. 청주·청원에 소로리 세계 최고미 볍씨 박물관과 쌀관련 문화시설을 짓자는 것이다. 더구나 청원 생명쌀과 청주 직지쌀을 시군이 경쟁적으로 브랜드화 하고 있지 않은가. 필자의 견해로는 청원 생명쌀이 진짜 최상급의 향과 맛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소로리 볍씨가 바로 1만7천년 전부터 그곳에서 토속 충청 사람들과 서로 주고 받으면서 진화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심청전에는 심봉사로 대표되는 청맹과니 당달봉사들의 이야기가 대미를 장식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눈동자가 멀쩡한 거 같으나, 실상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일러 당달봉사 청맹과니라 한다. 필자는 오는 6·4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에게 고언을 한다. 그 아무리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즐비하게 자랑하면서도 세계에 충청도가 자신있게 내놓을 '소로리 고대미 볍씨 문화박물관'을 짓겠다는 공약이 없는 정치인들이야 말로 비전도, 시력도 없는 당달봉사들이라고 단언한다. 문화가 없고 역사가 없고 생명이 없는 권력과 돈과 사업이윤 밖에 모르는 그런 정치가들은 자방자치에서 떠나야 한다. 적어도 청주·청원에선 청맹과니들의 행진이 멈춰야 한다.

 

 

 

고고학사전

소로리 유적

[ 淸原 小魯里 遺蹟 ]
지역 청원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 위치한 다층위 구석기시대 유적이다. 이 유적은 오창과학산업단지 건설지역으로 산업단지의 남서쪽 끝부분에 자리하며, 청원군 옥산면 남촌리 새말마을에서 미호천 방향으로 비교적 길게 뻗어 내린 해발 33~37m의 낮은 소구릉상의 끝부분에 해당한다.

이 유적은 1994년 3월 처음 발견하여 1996년 12월부터 1997년 1월에 걸쳐 시굴조사를 하였고, 1997년 11월부터 1998년 4월 15일까지 충북대학교박물관 주관 하에 A·B·C지구로 나누어 4개 조사팀이 참여하여 조사하였다.

A지구의 지질층은 5개 지층으로 나뉘며 1개의 문화층에서 석기가 수습되었다.

1지층은 암갈색의 모래질 찰흙층으로 두께는 30~50㎝이다. 2지층은 이 층은 옅은 갈색을 띠며 중간 부분에는 망간이 집적되어 있고 보라색 찰흙층이 분포한다. 이 2층은 2-1·2-2(1문화층)·2-3지층(제2문화층)으로 세분된다. 유물은 대부분 토양쐐기 구조가 발달한 2-2지층(1문화층)에서 나왔다. 3지층은 황갈색의 사면 붕적토로 이루어져 있으며, 3-1(3문화층)·3-2·3-3지층의 3층으로 구분된다. 4지층은 하천퇴적층으로 비문화층이다. 5지층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기반암 풍화대이다.

소로리 구석기 유적 A지구에서 출토된 석제 유물은 모두 2,042점이다. 이 가운데 밀개 1점만이 표토층을 걷어내는 과정에서 수습되었으며, 그 이외의 모든 유물은 2-2지층(1문화층)에서 출토되었다.

2-2지층에서 출토된 2,041점 중 온전한 자갈돌 17점, 깨진 자갈돌 17점, 자갈돌 석기 1점, 몸돌 127점, 잔손질된 몸돌 2점, 격지 297점, 깨진 격지 66점, 작은 격지 43점, 잔손질된 격지 35점, 돌조각 1,264점, 작은 돌조각 138점, 잔손질된 돌조각 34점이 발굴되었다. 이들은 격지 떼기 과정에서 만들어진 격지나 몸돌 그리고 돌조각 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94.8%).

A지구 출토 유물에서는 격지나 돌조각 또는 몸돌에 잔손질이 베풀어진 석기는 전체 유물의 3.5%(71/2,041점)에 지나지 않으며 찍개류 등의 자갈돌 석기는 거의 없고 주먹도끼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특징을 지닌다. 주로 격지나 돌조각을 몸체로 이용하여 잔손질을 베푼 석기 종류로는 형식 분류상 긁개, 톱날 긁개, 홈날, 부리날, 밀개, 뚜르개 등이 있다.

유물의 석재는 규질암(72.5%)과 석영(25.8%)이 대부분이며, 그 이외에 사암, 응회암, 편마암, 유문암, 화강암 등이 있으나 매우 드문 편으로서 이러한 석재는 몇 점의 격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돌조각에서 나타난다.

B지구의 지질층은 5개의 층으로 나뉘며 1개의 문화층에서 석기가 수습되었다.

1지층은 경작층으로 이용되던 부분으로 발굴지역의 지형에 따라 경작층 아래에 성토층이 두껍게 쌓여져 있으며 밀개, 격지, 부스러기 등이 발굴되었다. 2지층은 상위 찰흙층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2-1지층은 엷은 갈색 찰흙으로 이루어진다. 2-2문화층은 윗부분에 토양쐐기가 잘 발달하였으며 그 아랫부분의 토양은 괴상구조를 보이며, 중간 중간에 망간이 집적되어있는 현상이 관찰된다. 이 지층은 1문화층에 해당하며 밀개, 긁개, 홈날, 격지, 찍개, 몸돌, 망치돌 등이 나왔다. 2-3지층은 굵은 모래가 많이 섞인 찰흙으로 이루어졌다. 이 지층은 2문화층에 해당되며 찍개와 격지가 각각 1점씩 출토되었다. 3지층은 하위찰흙층으로 황갈색의 사면붕적토로 이루어져 있다.

B지구에서 3지층이 나타나는 범위는 매우 불규칙한 편이다. 4지층은 하천퇴적층이다. 이러한 하천 퇴적은 주로 마지막 간빙기 초기에 온도가 높아지면서 해수면의 상승으로 형성된 것으로 연구되었다. 4지층의 퇴적상 특징은 제 2단구와 밀접한 것으로 보이며 시굴조사 때 토탄으로 보았던 것은 분석결과 유기질점토층으로 해석되었다. 5지층은 화강암으로 된 기반암이나 B지구에서는 이 지층부분까지 발굴하지 않았다. B지구에서 나온 유물의 암질의 종류를 살펴보면 규암(64.9%)과 석영(28.9%)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이외에도 편마암, 염기성맥암, 편마암중의 맥암 등이 보인다. 하지만 규암과 석영이외의 다른 암질들은 부스러기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을 뿐, 석기를 만드는데 이용된 암질은 규암과 석영이 가장 많이 이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지구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1문화층과 지표에서 찾은 것들이 대부분이고 2문화층에서 유물 2점이 찾아졌다. 이들 유물 가운데 지표에서 찾아진 원래의 유물의 자리는 아마도 1문화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C지구에서는 기반암층을 포함하여 5개의 지층과 3개의 구석기 문화층을 확인할 수 있었다. 1지층은 표토층으로 점토질이 많은 암갈색의 사질 찰흙층이다. 2지층은 색깔이 주로 옅은 갈색인 상위 찰흙층으로 상부 산록으로부터 운반된 사면 붕적토이다. 윗부분에는 토양쐐기구조가 발달되어 있고 아래부분에는 괴상구조를 보이며, 철분과 망간이 집적된 부분들이 증가하고 있다. 3지층은 색깔이 주로 황갈색인 하위 찰흙층이며 역시 사면붕적토이다. 4지층은 하천 퇴적층으로 최상부에는 적갈색의 찰흙층이 분포하고 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적갈색의 굵은 모래로 변하고 있다. 약 20㎝ 두께의 유기질 찰흙층을 방사선 탄소연대측정법으로 절대연대를 측정한 결과 그 연대가 36350 B.P.보다 더 오래된 연대(>36359 B.P.)로 나왔다. 5층은 화강암으로 된 기반암 층이다.

유물은 토양쐐기 구조가 발달한 2-2지층(1문화층)과 2-3지층(2문화층), 그리고 3-1지층(3문화층)에서 출토되었다. 1문화층에서는 다듬은 석기류 약간과 공구류 및 몸돌과 격지, 그리고 다량의 부스러기류가 출토하였다. 또 1문화층에서는 2곳의 석기를 제작하였던 공방이 확인되었는데 이곳에서 여러 점의 모루돌 및 돌망치와 함께 접합유물을 찾았다. 2문화층에서 출토된 유물은 매우 적으며 이 문화층의 시기는 1문화층보다 이른 후기구석기 시대로 짐작된다. 3문화층에서는 석기 5점과 약간의 부스러기가 출토되었으며 이 문화층의 시기는 대체로 중기 구석기 시대로 가늠된다.

결국 소로리 유적은 이와 같이 전 3지구를 크게 5지층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각 지층을 세분하면 9지층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가운데 문화층은 3개이다. 1지층은 비문화층으로 경작층이며 2-1지층 역시 비문화층이다. 2-2지층은 1문화층으로 토양쐐기가 발달한 엷은 갈색층이며 A·B·C지구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지층이다. 2-3지층은 2문화층으로 굵은 모래가 섞인 찰흙층으로 B·C지구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3-1지층은 3문화층이다. 이 층은 토양쐐기가 발달한 황갈색 찰흙층으로 지하수 유동에 의한 산화반전상구조가 발달되어 있고 C지구에서만 나타난다. 3-2·3지층은 비문화층이다. 4지층 역시 비문화층으로 고기 하천 퇴적층으로 유기질 점토층을 포함하고 있다. 5지층은 기반암이다.

문화층은 상위(1·2문화층)·하위(3문화층) 찰흙층에 발달되어 있는데, 이들 찰흙층은 구릉 윗부분 산록에서 발달된 토양이 하부로 이동되어 형성된 사면기원 퇴적층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소로리 유적 구석기지층은 마지막 빙하기에 형성된 것으로, 상위·하위 찰흙층은 각각 산소동위원소 제2기와 제4기로 해석되어진다.

소로리 유적에서 사용된 석재는 규암과 석영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밖에 사암, 화강암, 편마암, 응회암, 유문암, 염기성 맥암, 석영맥암 등인데 이 가운데 규암이 가장 많다. 석재의 획득영역은 유적의 주변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획득 과정에서 한 면, 또는 두 면이 편평한 돌감을 선호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석기의 대부분은 1문화층에서 출토되었고, 2·3문화층에서 출토된 석기의 수는 많지 않다. 전체 석기 구성상으로 볼 때 격지떼기에서 비롯된 몸돌과 격지 그리고 돌조각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잔손질된 석기가 드물고 석기종류도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자갈돌 석기가 출토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된다.

몸돌과 격지에서 관찰되는 특징으로 볼 때 격지를 떼어내기 전에 특별히 몸돌을 다듬어 준비한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는 몸돌의 타격면이 주로 자연면으로 구성되어있는 점과 대부분의 격지가 자연면 굽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그러하다.

특히 C지구 1문화층에서는 석기제작소 2곳이 확인되었는데, 몸돌·모루돌·망치 등과 함께 2-27점이 서로 짝이 맞는 28개체의 접합유물이 출토되어 주목되며, 이는 석기제작행위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보고자는 유적의 연대를 지층과 출토 석기의 특징을 고려하여 1문화층은 후기구석기시대 늦은 시기로, 2문화층은 후기구석기시대로 1문화층보다는 약간 앞선 시기로, 3문화층은 중기구석기시대로 보고 있다.

이 유적의 A지구 토탄 I·Ⅱ지구에서는 갱신세 토탄층이 확인되어 주목된다. 토탄층은 2개의 층으로 퇴적되었는데, 위층(13010 B.P., 14820 B.P.)과 아래층(17310 B.P.)에서 출토된 볍씨는 형태와 구조적인 면에서 볼 때 2가지 벼(고대형 단립·장립)와 2가지 유사벼(유사벼-1· 유사벼-2)로 구별되었다. 이들 볍씨의 DNA조성을 현재의 재배벼, 잡초성벼, 야생벼 등과 함께 비교 검토한 결과 평균 39.6%의 낮은 유전적 유사성을 지닌 것으로 밝혀졌다.

참고문헌

  • 청원 소로리유적(이융조·우종윤 편, 충북대학교박물관, 2000)

[네이버 지식백과] 소로리 유적 [淸原 小魯里 遺蹟] (고고학사전, 2001.12, 국립문화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