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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인물열전_2014여름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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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여름 백제문화특별전 전시기간 : 2014.6.24(화) ~ 8.31(일)
초청강연회 • 일시 : 2014.6.24(화)~2014. 8. 14(목) • 장소 : 한성백제홀
전시를 열며... 한강 변에 왕도를 정하고 고대 왕국으로 성장한 백제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그리고 그들은 어떤 세상을 꿈꿨을까?은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낯선 땅에 정착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남긴 유물을 담았습니다. 백제를 세운 인물, 백제에 색다른 문화를 가져오거나 받아들이고 발전시킨 인물, 백제의 기술과 문화를 바다 건너에 전파한 인물, 권력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의지를 지키며 살아간 인물들을 조명합니다.
유적 발굴을 통해 백제의 초기 역사가 조금씩 베일을 벗기 시작했으나,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에 대한 문헌자료와 관련 유물은 아직도 매우 적습니다.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백제인들의 이야기를 단서 삼아 그들의 녹록치 않았던 삶을 다양한 문화의 수용과 융합, 전파의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했습니다. 백제인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역사와 문화를 새로운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PART 1. 두 나라를 세운 여인 -소서노召西奴
수촌리 무덤의 유물 출토 모습 충남 공주시 수촌리 8호 돌덧널무덤石槨墓의 유물 출토 모습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무덤에 묻혔던 당시 백제사람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머리부분에는 작은 구슬들이 머리띠모양을 이루고, 양쪽 귓가에는 금귀걸이 한 쌍이 놓여 있다. 어깨와 팔, 옆구리에 해당하는 부위에는 큰 역삼각형모양으로 구슬이 줄지어 놓여있어 구슬을 옷에 꿰매었던 흔적으로 보인다. 배꼽 부위에는 커다란 곡옥이 있고, 두 손목 부분에는 팔찌로 추정되는 구슬들이 있으며, 허리부분에는 부채손잡이로 보이는 옻칠한 자루 흔적이 있다. 발부분에는 금동신발金銅飾履과 발찌로 보이는 다양한 구슬이 퍼져있었다. 무덤의 규모와 금귀걸이, 금동신발, 다양한 구슬 꾸미개 등으로 보아 무덤에 묻힌 사람은 백제 중앙귀족 출신 여성으로 추정된다.
PART 2. 다문화, 글로벌 백제인
보과寶菓부인
보과부인은 대방군 태수의 딸로서 백제 책계왕(286-298)에게 시집온 백제의 왕비이다. 국제결혼을 통해 백제에 들어와 다문화 가정을 이룬 최초의 사례이며 백제 화친和親외교의 첫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보과부인과 책계왕의 혼인을 통해 대방군과 백제의 군사적 연맹이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대방군의 각종 문화가 직접적으로 백제에 유입되었을 것이다.
낙랑․대방군의 무덤에서는 각종 화장도구와 장신구가 많이 출토되었다. 당시 매우 비싼 가격이던 칠기그릇이나 청동거울, 희귀한 수입품으로 만든 수정·마노·호박제 꾸미개, 바다거북 등껍질로 만든 비녀 등의 유물은 낙랑․대방군의 상류층 여성들이 매우 호화스럽게 생활했음을 알려준다.
마라난타摩羅難陀 마라난타는 384년 불법을 전하기 위해 동진에서 백제로 건너 온 천축의 승려胡僧이다. 침류왕은 마라난타를 궁궐로 모시고 절을 세우는 등 환대했으며, 이로부터 백제에 불교가 시작되었다. 불교 전래는 비단 새로운 종교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건축, 조각, 공예, 예식, 학문 등 종합적인 문화 유입을 의미했다. 한성도읍기의 불교는 웅진‧사비기에 성행하는 백제불교의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PART 3. 바다를 건넌 사람들 -渡倭人도왜인
왕인王仁 왕인은 5세기에 왜로 건너가 ?논어論語? 10권과 ?천자문千字文? 1권을 전해주고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는 인물이다. 왕씨는 중국계 성씨이므로 왕인은 낙랑․대방 출신의 백제관료인 것으로 보인다. 전남 영암군에는 왕인이 탄생한 곳(성기동), 공부한 곳(책굴), 왜로 가는 배를 탄 나루터(상대포) 등이 전하며, 일본에는 왕인 무덤과 왕인을 기리는 신사神社 등이 세워져 있다. 모두 후대 사람들이 만든 전설의 흔적일 개연성이 높다.
신제도원과 같은 왕족 여성들은 왕실간의 유대와 생활 속의 기술문화를 전수하기 위해 왜로 간 경우가 많았다. 5세기 왜 왕실이 직조기술을 얻고자 중국과 백제로부터 직조기술자들을 데려온 기록이 다수 있다. 따라서 신제도원이 거느린 여인 7명은 아마도 직조기술자였을 것이다.
PART 4. 권력에 굴하지 않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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