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흔적따라

<문화재 이야기> 古인골·미라가 사라지고 있다

wowjenny 2014. 4. 7. 21:04

 

<문화재 이야기> 古인골·미라가 사라지고 있다

은평신도시 조선시대 인골(한강문화재연구원 제공)

장사법에 따라 무연고 시체로 간주해 화장·재매장

"인골은 인류사의 보고"…고인골보관센터 건립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경주 대릉원에 자리 잡은 황남대총은 4~5세기 어느 신라왕과 그 왕비를 나란히 매장한 봉분 두 개를 남북으로 이어붙인 이른바 쌍둥이 고분이다. 남쪽 봉분을 남분(南墳), 북쪽 봉분을 북분(北墳)이라 해서 구별한다.

한반도 고분 중에서는 규모가 최대인 이 황남대총은 1973~75년 문화재관리국 경주고적발굴조사단 조사 결과 금관이며 금동관, 금제 허리띠 등 각종 무수한 보물을 쏟아냈지만 아쉽게도 무덤 주인공을 가릴 수는 없었다. 누구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그의 유체(遺體)는 있었다.

 

황남대총 남분 발굴보고서를 작성한 이은석 문화재청 학예연구관의 말이다.

"왕비 무덤으로 생각되는 북분에서는 인골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삭아서 없어진 거지요. 하지만 그의 남편이자 어느 신라왕의 무덤일 남분에서는 제법 많은 뼈가 발견됐습니다. 뼈는 석관을 따로 마련해서 넣고는 다시 무덤에다가 묻어주었습니다."

고고학 발굴에서는 유물 하나도 버리지 않고 수거함이 원칙인데 왜 인골은 다시 묻었을까? 발굴에서 드러난 유물은 1점이라도 빠지면 난리가 나는 통에, 더구나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 인골은 희귀하기 짝이 없는 마당에 어쩌면 그 어떤 유물보다 더 중요한 인골은 왜 심지어 없애버리거나 묻어버려도 상관없을까?

 

그 이유를 전남 나주에서 찾아본다. 2006년 나주에 소재하는 동신대 부설 문화박물관은 삼국시대 백제 공동묘지인 이곳 영동리 고분군을 발굴조사한 결과 하나의 봉토 안에서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한 고대 인골 9구와 인골편 1구를 발견했다.

이때 발굴한 인골들은 8년이 지난 지금 이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다른 출토유물들은 모든 매장문화재는 국가로 소유권이 귀속한다는 관련 법률 규정에 따라 국가로 귀속조치됐지만 인골은 이런 조치는커녕 박물관 자체에서 보관 중이기만 하다. 이 박물관 이정호 관장의 말이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이나 매장문화재보호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서는 유물만 등록하도록 합니다. 인골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어요. 인골이 유물인가 하는 고민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지만, 인골을 어떻게 처리하라는 아무런 지침이나 규정이 없습니다. 영동리 인골 또한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도 화장하거나 다른 곳에 묻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인골은 물론이고 그것을 포함한 미라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조선시대 무덤 발굴이 급증하면서 미라 발견 역시 잇따르며, 이를 통한 관련 학계의 연구 역시 장족의 발전을 이룩하지만, 정작 인골과 미라를 보호할 그 어떤 법적 규정도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 중 상당수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다.

 

조선시대 미라나 인골은 고고학 발굴 말고도 특히 이장(移葬)을 통해 무수하게 발견되고 있지만 이 역시 같은 방식으로 사라지고 만다.

조선시대 무덤 수만 기가 밀집한 은평 신도시 유적과 중랑구 신내동 유적을 발굴한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강문화재연구원 임영근 부원장은 "상당수 무덤에서 인골과 미라가 발견되지만 이를 조사기관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모두 수거해 보관할 수도 없고 더구나 국가에서도 이와 관련한 어떠한 처리 지침도 없기 때문에 필요한 전문가나 기관에 조사를 의뢰하거나 그들이 자체적으로 수습해 연구할 뿐"이라고 말했다.

 

서영일 한백문화재연구원장은 "물론 인골이나 미라를 모두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해야 하겠지만 현실적인 문제점도 없지 않다"면서 "만약 인골까지 포함해 (발굴)조사하고 분석하며, 관련 보고서까지 낸다면 아마도 현재의 발굴조사 비용은 20%가량은 증가한다고 봐야 하며, 이는 고스란히 사업시행자에게 그만큼 발굴조사 비용을 더 떠안기는 셈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고인골과 미라에 대한 처리 지침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한데 현재 고고학 발굴현장에서 적용되는 법률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률 제12조(무연고 시체 등의 처리)에 의거해 고고학 발굴을 통해 드러난 인골과 미라 대부분은 무연고 시체로 간주되어 버려지는 실정이다.

 

고고학이 주로 발굴이라는 방식을 통해 유적과 유물을 연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류 문화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면, 인골이나 미라보다 더 귀중한 인류 문화사의 흔적이 있을 수 있을까? 한데 정작 인골과 미라는 버리면서 그들이 쓰다 남긴 '물건'만을 등록하고 보존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기적적으로 남겨진 인골과 미라는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일부 연구소나 대학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그리고 '임의로'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고인골 분석전문가인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 서민석 박사는 "우리 연구소에는 현재 각지에서 분석 의뢰한 인골이 대략 300개체"라면서 "이들 인골은 유물로 정식 등록되지 않은 까닭에 우리 연구소와 분석 의뢰 기간 사이에는 인수인계 대장만 존재할 뿐"이라고 전했다.

 

국내 고병리학계가 대략 파악하는 통계치에 의하면 수집 인골은 서울대에 의대와 인류학과를 합쳐 500개체 정도를 필두로 영남대박물관 260여 개체, 부산대박물관 240여 개체,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 380여 개체, 한양대박물관 170여 개체가량이며, 고인골 분석 전문인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김재현 교수 또한 상당한 수량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라는 서울대 의대와 단국대·고려대·가톨릭대 의대 같은 기관에서 일부 개체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골이나 미라는 왜 중요할까?

 

 

신내동 조선시대 미라(한강문화재연구원 제공)

신동훈 서울대 해부학교실 교수는 "고인골은 과거 사람들의 건강 및 질병 상태, 법의학적 기초자료 등 사회적으로도 필요 불가결한 소중한 과학적 정보를 준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과거 집단의 인구학적 패턴이나 질병, 그리고 영양상태를 포함한 건강 상태, 노동 강도를 비롯한 행위패턴, 식생활 양상 등의 다양한 인류사를 복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타 유물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미라에서 기생충을 검출함으로써 당시 식생활 패턴의 일단을 알아내는 일이 그런 보기다.

 

따라서 신동훈 교수는 "우리도 구미 선진국처럼 관련 연구자와 고고학자, 행정당국이 힘을 합쳐 인골을 체계적으로 수집, 연구할 법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무엇보다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확인되는 인골을 일반 무연고 시신과 법률적으로 똑같이 간주해서는 안 되며, 100년 이상된 고인골은 윤리적으로 저촉되지 않는 한 국가가 체계적으로 수집 관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교회 묘지 등지에서 나오는 100년 이전의 고고학적 인골은 그 처리방법과 관련한 법령을 완비하고, 이에 대한 연구는 공익성을 띠는 위원회 감독 아래 진행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인골은 문화재로 규정되지 않음으로써 그 처리방식이 지금 문제이듯이, 그것을 문화재로 규정할 경우 유교 윤리가 여전히 강고한 한국사회에서는 연구윤리 문제를 동반할 우려가 커지므로 우리 실정에 맞는 여러 가지 고려가 있어야 한다고 신 교수는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문화재청의 문제의식은 어느 정도일까?

 

발굴제도과장을 역임한 윤순호 대변인은 "그런 문제점들이 있어 몇 년 전에 청 차원에서 해외 사례조사도 하고 관련 법령도 손을 보려 했지만 지금은 솔직히 중단된 상태"라며 "고인골보관센터 정도는 국가 차원에서 적극 건립을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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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4/07 07: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