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파라가스, 이 화분이 우리집으로 온 지 꼭 20년이 되었습니다.
4월에 결혼을 하고 남편과 제 친구들을 번갈아 초대하기를 몇 번....
선배언니의 품에 안겨 왔던 이 화분은 그날 이후로 줄곧 우리와 함께 하고 있으니
이것을 볼 때마다 세월의 유수함을 아니 느낄 수가 없습니다.
큰애 준하가 태어나고 유치원을 가고 동생 준원이가 태어나고......
저희가 미국에 가 있는 동안엔 동생집 베란다에서 여름 겨울 두번씩을 씩씩하게 버텨내고...
거름 한 번, 영양제 한 번 제대로 준 적 없는데
맹물만 먹고도 저렇게 오랜세월 꿋꿋하다니,
가끔씩 저녀석의 운명(?)을 음미해보면
웬지 모를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됩니다.
좀더 부지런하고 싹싹한 주인을 만났더라면......
처음엔 상식이 없어 분갈이를 못 해주었고
그 이후론 분갈이 해주면 꼭 세상 하직할 것 같은 두려움에 주저하다 보니
저 녀석은 폭이 10cm 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울타리 안에서
싫으나 좋으나 20년 이상을 꿋꿋이 살고 있네요.
우리 두 녀석들 태어나면서 지금같이 청년이 되는동안
묵묵히 거실 한켠에서 아이들 커나가는 모습을 지켜봤을 너...
내 머릿속 기억보다도 더 또렷한 생생함으로 두 녀석의 성장사를 품고 있을텐데
아스파라가스야.....오늘 문득 네가 너무도 고맙고 대견하구나!!
요즘 준원이가 많이 힘들어하는 것 너도 알고 있지?
이제 내일 모레면 그동안 준비했던 것, 결과물로 보여질텐데...
벌써 특별전형에서 한번의 쓴잔을 맛본터라
준원이가 처음으로 온 몸이 다 쑤신다는 표현을 하는구나.
그러면서도 되야 할 친구들이,자기보다 더 열심히 준비한 친구들이
합격했다고 의젓하게 말하던 녀석.
엄마는 그렇게 얘기하는 네가 너무도 예쁘고 듬직해서......사랑해 아들!!
혹시 네가 이번에 또 실패한다 해도 엄마는 기쁘게 그 결과를 받아드릴 수 있어.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만큼 일반고에 가서도 잘하리라 믿기때문이야.
저는 화초를 제대로 잘 키우는 재주가 없습니다.
그동안 일, 이년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해야 했던 일들이 비일비재 하다보니
제 평생 과제 중의 하나가 바로 화초를 멋지게 한번 잘 키워보는 일입니다.
그러니.... 저녀석이 어찌 제 눈에 예뻐보이지 않겠습니까?
그저 신통 방통할 따름이지요...ㅎ
그러나 언제까지 저녀석과 함께 할런지는 모를 일입니다.
20년 30년 계속 저 모습 그대로 우리곁에 두고 싶어하는 마음을
그저 헤아려 주었음 하고 바랄 뿐입니다.
'흔적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월 첫 이야기 (0) | 2006.12.04 |
---|---|
준하, 수능시험 보는 날 (0) | 2006.11.16 |
여름휴가를 다녀와서: "미션힐즈" 사장님 내외분께 / 06.08.15 (0) | 2006.10.15 |
탈렌트 한고은씨를 봤네요 /06.07.28 (0) | 2006.09.20 |
대전, 모교 방문 / 06.07.05 (0) | 2006.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