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집은 12층 아파트의 맨 꼭대기입니다. 미국에서라면 모두가 부러워하는 팬트하우스 소리를 듣겠지만......ㅎ 집을 보러갔던 날 하얗게 내린 눈이 소복히 쌓인 길건너 공원의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서
소위 싸이드라는 핸디캡도 잊어버리고 후다닥 계약을 했던 집입니다. 오래된 아파트인만큼 세련된 부분도 편리한 공간도 찾기 힘들지만 알게 모르게 손 때 묻은 따뜻한 情이 새록새록 느껴지는 단지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곳에서 도의적으로 무례한 짓을 오랫동안 저지르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하는 설겆이...... 그때마다 남의 집을 훔쳐봅니다....ㅠ.ㅠ 뒷동의 801호!! 씽크대에서 눈만 10cm 들었다하면 바로 보이는 그집 거실.... 그댁은 낮이고 밤이고 커텐이나 브라인드로 안을 가린적이 없습니다.
항상 화알~~~~짝 이지요. 낮에는 창가 쪽만 보이니까 좀 덜 민망합니다만 밤에는 불빛때문에 거의 전 거실이 노출 상태로 그대로 접수됩니다.
그저께는 아줌마 소파에 비스듬히 누우셔서 TV 보시고 어제는 아저씨 탁자에 발 올리고 뭔가 맛난것 드시고 어제 아침엔 창가에 바짝 붙여 놓은 런닝머신 위에서 아줌마 열심히 걸으셨어요.
저희 집에 식구들 있는 날이면 그럴때 저도 모르게 설겆이하면서 생중계도 합니다. "아줌마 점점 빨라지시네, 거의 뛴다 뛰어...저렇게 뛰시면 금방 살 빠지시겠다......
아! 없어지셨어...물 드시러 가셨나, 전화 받으러 가셨나...
어, 창문 열렸네. 좀 더우신가부다...또 달린다 달려........" 그러고는 기막혀서 온식구들 낄낄거리며 웃습니다.
노력도 많이 했어요. 길게 창문 커텐도 만들어 달고
의식적으로 설겆이에만 시선을 돌리려고 애를 씁니다만 12층과 8층은 딱 눈높이가 맞습니다. 창문턱과 커텐사이를 비집고 내려다보기 좋게.......
미안하지요...염치도 없구요..... 남편말을 빌자면 우리가 가서 커텐이라도 좀 달아드려야 할 것 같은.......
오래전 언젠가 보았던 "슬리버"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뉴욕의 한 아파트 주인인 윌리엄 볼드윈은 각 방마다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는
입주자들의 사생활을 하루종일 지켜보는 것을 낙으로 삼는 괴퍅한 인물이지요. 그 영화를 보면서 그 당시 그런 상황을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던 저는
화가 치미는 것뿐만 아니라 무섭기까지 했었어요. 어떻게 저런 일이.....어쩌면 저럴 수가...... 근데 현재의 제 상황이....별반 다르지 않네요....의도적인 것 빼고는.....ㅠ.ㅠ 창문에 시트지로 도배라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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