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흔적따라

한성백제박물관, '백제, 마한과 하나되다' 특별전

wowjenny 2013. 6. 26. 11:39

 

<백제는 마한을 언제, 어떻게 병합했나>

고창 봉덕리 1호분 4호돌방(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한성백제박물관, '백제, 마한과 하나되다' 특별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는 졸본부여에서 남하한 온조 집단이 기원전 18년에 지금의 서울과 한강 주변에 정착함으로써 태동했다. 이 땅은 마한왕이 다스리는 땅의 일부다.

이후 백제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3년 기록에는 이 해 "8월에 마한에 사신을 보내 도읍을 옮긴 사실을 알리고 마침내 강역을 (마한과) 나누어 정하니 북쪽은 패하(浿河)에 이르고 남쪽은 웅천(熊川)이 경계이며, 서쪽은 큰 바다에 닿고, 동쪽은 주양(走壤)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러다가 그 얼마 뒤에는 백제는 마한을 완전히 정복한다.

 

한성백제박물관(관장 이인숙)이 고대국가 백제가 마한의 일부로 정착했다가 영역을 확장해 가는 과정을 조명하는 여름 특별전 '백제, 마한과 하나되다'를 마련해 25일 개막한다.

박물관은 오는 9월1일까지 계속할 이번 특별전이 "백제 역사상 최전성기를 구가한 한성도읍기(기원전 18- 서기 475)의 최대 영역과 영역확장 과정을 통해 백제 사람들의 국가관, 세계관을 소개하는 자리"로 마련했다고 23일 말했다.

 

삼국사기에서는 백제가 이미 시조 온조왕 때 마한을 완전 병합했다고 하지만 고대사학계와 고고학계에서는 그 시기가 이보다 훨씬 늦다고 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고고학계에서는 백제 영역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유물로 흔히 곧은입항아리(直口短頸壺), 세발토기(三足器)와 금동관모·신발과 같은 위세품(威勢品. 사치품의 일종), 고리자루큰칼(環頭大刀)을 비롯한 철제 무기와 말갖춤(馬具) 등을 꼽는다.

특히 특권층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한 각종 위세품은 백제가 지방 수장층에 사여했다고 간주한다.

 

이런 유물이 현재까지는 공주 수촌리, 서산 부장리, 고창 봉덕리 등지에서 출토됐다.

이에 이번 특별전은 3개 주제로 나누어 한성백제의 최대 권역과 마한과 백제의 문화차이, 백제와 마한이 통합하는 과정을 조명하고자 한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고창 봉덕리 1호분 4호 석실 출토 금동신발과 고흥 길두리 안동고분 출토 금동관모·금동신발, 오산 수청동 움무덤 출토 중국 청자반구호, 화천 원천리 백제마을 출토 유리·흑옥 장신구를 비롯한 최신 발굴자료가 처음으로 함께 공개된다.

 

 

고창 봉덕리 1호분 4호돌방 금동신발(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각종 제사용 토기와 새 모양 토제품이 확인된 아산 명암리 밖지므레 유적 출토품과 서산 예천동 유적에서 수습한 칠기 칼집에 든 칼도 자리를 함께한다.

유물에 얽힌 이야기는 VR, 샌드아트·투명모니터 등과 같은 각종 영상으로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한다.

전시기간 중에는 △유물상으로 본 백제 영역화 과정(박순발.충남대) △한성백제기 철기문화의 특성(이남규.한신대) △전남지역 마한과 백제의 관계(임영진.전남대) △4-5세기대 백제의 지역상(이현숙.공주대박물관)과 같은 일반강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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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23 11:4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