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흔적따라

국립민속박물관, 조선후기 이만기 '만인산' 특별전

wowjenny 2013. 6. 27. 14:02

 

<'지방관을 유임케 해주소서' 염원 담은 만인산>

이만기 만인산

국립민속박물관, 조선후기 이만기 '만인산' 특별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진성이씨 퇴계 이황의 후손인 이만기(李晩耆.1825-1888)는 1878년 6월25일 임기 2년인 평안도 초산부사로 부임했다. 그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시점을 반년 정도 앞둔 1879년 11월, 초산 지역 유생들을 중심으로 중앙정부를 향한 유임 운동이 벌어졌다.

 

이만기가 퇴계 후손으로서 청렴결백하고 공평하게 정사를 펼쳤으므로 초산부사로 더 근무하게 해 달라며 연명을 받았다. 이에 서명한 사람은 2천91명에 이르렀다. 당시 초산부 인구 중 남자가 대략 9천 명임을 감안하면 웬만한 남자는 다 서명했다고 봐도 좋다.

 

이들은 그런 뜻을 만인산(萬人傘)이라는 일산(日傘)으로 만들어 표시했다. 일산 덮개인 비단에다가 자기가 사는 고을과 자기 이름을 써서 연명하고는 이를 기념으로 이만기 본인에게 선물했다. 만인산 덮개 복판에는 '행초산부사 이공 만인산(行超山府使李公萬人傘)'이라고 썼다.

 

1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서명했다 해서 만인산이라 부르는 이 일산은 그의 종가인 안동 의인마을 초산댁 벽장 다락에 보관돼 있었다.

그러다가 이 만인산은 1976년 안동댐 건설로 동네가 수몰되기 직전 이만기의 후손 이동영(李東寧) 씨가 소장했다.

 

한데 이런 만인산이 어쩌다가 TV쇼 '진품명품'에까지 등장함으로써 일반에 공개됐다.

이 프로그램을 우연히 본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심상치 않은 물건임을 직감하고 이를 보존처리하고 전시자료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이씨에게 전달했다.

 

이씨는 만인산 말고도 집안에 소장한 이만기의 초산부사 시절 행정을 정리한 '초산실기'와 1881년 2월 승정원 승지로 임명돼 초산부사를 물러나면서 그 후임자와 함께 작성한 초산부 관련 업무 인수인계 문서인 '초산부사 해유문서'를 비롯해 총 576건 946점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만기 만인산

비단 자수로 덮개를 만든 만인산이 보존처리를 거쳐 일반에 공개된다. 오는 26일부터 9월23일까지 개최되는 이동영 기증 만인산 특별전에 이씨의 다른 기증품 중 60여 점과 함께 일반에 선을 보인다.

 

이 만인산을 분석한 최순권 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만인산은 조선후기에는 사치와 착취를 이유로 조정에서 금지한 일도 있으며, 개화기 때 신소설 중에 그 폐해를 다룬 '만인산'이 있을 정도"라면서 "하지만 이 만인산은 그런 시대 분위기에서도 잘 살아남았고, 더구나 다른 기증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이만기가 지역사회에서 정말로 존경받는 지방관임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아가 최 연구관은 "이런 만인산이 더러 남아있으나 대부분 훼손이 극심하지만 이동영 씨 기증 만인산은 완벽한 상태로 원형을 전한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덧붙였다.

 

taeshik@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6/24 18:1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