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마애 삼존불
충남 태안 백화산 정상 바로 못미쳐 큰 바위에 새겨져 있는 "태안 마애삼존불"은
국보 제 307호로 중앙의 보살을 중심으로 여래입상이 좌우로 서 있는 특이한 형식이다.
7세기 초 백제시대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나 정확한 연대는 확실치 않다.
5월임에도 동백의 흐드러진 모습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함을, 더불어...
조심히 비껴가옵니다....
마애불 바로 옆에는 일제 강점기에 경주김씨의 족보를 넣어 봉인해 두었다는 바위가 있다.
이곳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주김씨 문중이 이곳에 족보를 보관하면 널리 성공할 것이라는 풍문에 따라
행한 흔적이라는데 양가 감정이 드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2004년 국보 제 307호로 지정되었으며 재료는 화강암으로 높이 250㎝ (좌측여래입상), 180㎝(관음 보살상)
240㎝(우측여래입상)
저부조로 조각한 길쭉한 연꽃대좌는 가운데 잎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며
연잎 사이에 또 다른 잎이 겹쳐 있는 중판으로 되어 있다. 연꽃대좌의 양끝이 좌우여래 대좌에 가려져 있는 상태다.
또한 오랜세월 흙 속에 파묻혀 있어 하단부는 검게 변색되었다.
장대한 체구의 오른쪽 여래입상은 상 전체에 위엄과 힘이 흐른다.
통통한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며 어깨는 딱 벌어져 있어 위풍당당하다.
대의 (大衣)는 양쪽 어깨를 감싼 통견의(通肩衣)로 가슴이 타원형으로 크게 열렸고
그 아래로 U자형을 그리며 무릎까지만 내려와 있는데 6세기 후반 여래상의 대의 자락이 발목까지 내려온 것과는
사뭇 다른 착의법으로 7세기 전반의 여래상 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뚜껑에 꼭지가 달린 작은 단지를 들고 서 있는 왼쪽의 여래상(약호를 들고 있는 약사여래로는 시대가 가장 올라감)은
떡 벌어진 어깨와 당당한 체구, 작은 육계, 정면관 등 대체로 오른쪽 여래상과 비슷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다르다.
머리를 바로 세운 오른쪽 상에 비해 고개를 약간 숙였고, 미소로 보아도 왼쪽 상이 훨씬 활짝 미소 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의 착의법도 사뭇 다르다.
오른쪽 상은 대의 끝자락이 왼쪽 손목으로만 넘어간 북위식 착의법을 하고 있는데 반하여,
왼쪽 상은 한쪽 끝이 손목과 왼쪽 어꺠를 모두 감싸고 넘어간 북제식 착의법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개 북위식 착의법은 6세기 후반무렵, 북제식 착의법은 7세기 전반 무렵에 나타나므로
오른쪽 여래상에 비하여 왼쪽 여래상에 새로운 양식이 많이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앙에는 얼굴의 눈, 코, 입이 심하게 파손되어 표정을 알수는 없으나 볼록한 양볼만은 잘 남아있어
미소를 엿볼 수 있는 관음 보살이 자리하고 있다.
가슴부근에서 오른 손을 위로, 왼손을 아래로 하여 보주를 감싸들고 있어 일명 "봉보주형관음 보살입상"이라고도 한다.
이 관음상은 천의를 무릎 위에서 X자형을 그리며 양팔에 걸치고 관대가 옆으로 길게 뻗은 삼면관을 머리에 쓰는 등
시대가 올라가는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으나, 좌우여래상의 장대한 체구와 낮은 육계 및 착의 방법 등에서
중국의 제,주 및 수나라 불상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7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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