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사랑] 풍납토성 미래마을과 백제왕궁 유적 출토 갑골(甲骨) | 추천 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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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문화재사랑] 풍납토성 미래마을과 백제왕궁 유적 출토 갑골(甲骨) | |
원문링크 : http://playculture.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1/30/2009013000573.html | |
![]() 입력 : 2009.01.30 10:41
풍납토성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25년의 홍수 때이며 그 후 도시화된 토성 안에서 1997년 1월 아파트 공사시 필자에 의하여 다량의 백제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어 학계에 주목을 받게 되었다. 앞으로도 풍납토성을 통해 많은 한성백제 시기의 문화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잃어버린 백제전기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된다.
2000년 5월 16일에는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을 보존하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훈령이 있은 다음 사적으로 지정 공고되고 곧바로 이곳 미래마을도 이 조치에 따라 먼저 발굴하게 되었다. 이 해 11월 16일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첫 번째 발굴 현장 설명회 때 약 1,652.9m² 면적의 발굴장 안에는 한 평 남짓한 곳에서 별것도 아닐 것 같은 기왓장 몇 조각만 보일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나대지처럼 보였다. 당시 주민들이 보기엔 수십 년을 살아온 집터에서 출토된 몇 장의 기와 조각 때문에 자기들이 살던 집터에 다시 집을 짓지 못하고 졸지에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건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발굴 지도위원이나 문화재위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던 몇 장의 기와 조각이 백제시기의 기와로 밝혀지자 결국 그 곳을 사적으로 보존하도록 결론을 내렸다.
부여와 고구려에서는 국가의 제사와 전쟁이 있을 때는 소의 발굽 뼈로 점을 친 기록이 중국문헌에 보인다. 필자는 일찍이 문헌자료를 통하여 백제나 고구려도 부여와 마찬가지로 갑골습속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하는 추정을 한 바 있었는데, 이번에 그 실물(갑골)이 풍납토성 미래마을 백제왕궁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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