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흔적따라

4대강 공사 구간서 '백제 마을' 유적지 발견...화천군 원천리

wowjenny 2011. 2. 19. 23:30

 

4대강 공사 구간서 '백제 마을' 유적지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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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

4대강 공사구간에서 백제 마을로 추정되는 대규모 유적지가 발견됐습니다.

발굴이 진행되는 동안은 해당 구간의 4대강사업이 진행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박대용 기자입니다.

◀VCR▶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북한강변에서
유적지 발굴이 한창입니다.

청동기에서
삼국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집터 백여군데가 포함된
큰마을이 발견됐습니다
화재로 기둥이 검게 탄 흔적을 비롯해
돌과 흙을 쌓아 만든 부뚜막
그리고 청동기시대 특징인 석관묘도
발견됐습니다.

특히, 백제시대에 주로 만들어진
흑색마연토기가 화천에서 발견된 것도
이례적입니다.
백제가 힘이 강했을 때
춘천까지 진출한 것은
문헌으로 알려져 있지만, 화천까지
백제가 진출했다는 증거는
이번에 처음 발견됐습니다.

◀INT▶ 신희권/문화재청 발굴제도과 연구관
"주거지의 양상이나 유물 양상으로 봤을 때는
거의 백제가 이미 그쪽으로 진출해서
융합이 이뤄진 관계 같아요."

북한강변에서
이렇게 유적지가 발견되면서
4대강 공사에도 차질이 예상됩니다.
유적지가 발견된 곳에는
습지인 연꽃단지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공사계획 변경이 불가피해보입니다.

◀INT▶ 4대강 사업 공사현장 관계자
"이쪽에 흙을 파내서 연꽃에 물이
들어가야하기 때문에... 지금 계획은
연꽃단지로 하고 있습니다.
(연꽃단지로 만들기 어렵겠네요.
유물이 많이 나와서?)
그건 좀 지켜봐야겠습니다."

문화재청은
유적지 발굴이 끝날 때까지
공사는 어렵다며, 유적지를
보존할 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MBC뉴스 박대용입니다.

박대용 기자 20100917

 

 

 

- 화천 원천리 백제 유적 현장설명회 개최

4대강 살리기 북한강구간에서 대규모 백제 취락유적 발견 -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에서 허가하고,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기관인 예맥문화재연구원(원장 정연우)에서 조사 중인 화천 원천리 유물산포지 내 유적 발굴조사 결과에 대한 현장설명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

 

< 현장설명회 개요 >

ㅇ 일  시 : 2010. 11. 3(수) 10:00

ㅇ 장  소 :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원천리 일대 발굴 현장

ㅇ 참석자 : 언론기관, 문화재청, 조사기관 등

 

< 발굴 개요 >

ㅇ 조사기간 : 2010. 5. 26 ~ 현재

ㅇ 조사결과

  - 청동기시대 주거지 약 23기, 석관묘 1기, 철기~삼국시대 주거지 약 120기, 수혈 유구 약 120기, 구상 유구 1기 등 총 약 265기

  - 철기~삼국시대 경질무문토기, 타날문토기 등 다수. 특히, 광구단경호, 무뉴식뚜껑, 흑색마연토기, 직구호류, 고배 등 한성 백제기의 토기 다량 출토

  - 철제괭이·U자형삽날·철겸 등 농구류, 철부·철촉 등의 무기류, 등자·재갈 등의 마구류와 철제 찰갑, 금동제 이식, 유리제 이당 등 다양한 유물 출토

 

위 자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발굴제도과(신희권 연구관 ☎ 010-4560-4293)와

예맥문화재연구원(원장 정연우 ☎ 011-377-3556, 책임조사원 심재연 ☎        011-375-1826)으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보도 요지>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의 허가를 받아 예맥문화재연구원(원장 정연우)에서 발굴조사 중인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원천리 일원의 “화천 원천리유적”에 대한 현장설명회를 2010년 11월 3일 오전 10시에 개최한다.

화천 원천리유적은 원주지방국토관리청이 시행하는 ‘4대강살리기(북한강) 사업구간 12공구 내’에 위치한 유적으로 지난 2010년 3월 15일부터 4월 20까지 시굴조사를 실시하였으며, 2010년 5월 26일부터 현재까지 발굴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현재까지 현재 확인된 유구는 약 265기로, 청동기시대 주거지 23기, 석관묘 1기, 철기(원삼국)~삼국시대(한성백제) 주거지 약 120기, 수혈유구 약 120기, 구상유구 1기 등이다. 이 중 주를  이루는 것은 철기~삼국시대의 유구로 북한강 상류지역에서 처음으로 발굴 조사된 한성 백제기의 대단위 취락유적이라 할 수 있다.

 

철기~백제시대의 주거지는 중복현상이 관찰되고 보존상태가 양호한 화재주거지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 당시의 가옥구조와 변화상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철자형(凸字形)과 여자형(呂字形)이 대부분인데, 출입구의 반대쪽 단벽이 직선·곡선·둔각으로 다양하게 확인되고 있으며, 출입구 쪽의 단벽도 직선인 것과 둔각으로 변화된 것이 확인되는 등 시간적 변화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출입시설도 판재를 사용하여   계단식으로 시설한 것, 강돌을 사용하여 문지방을 시설한 것, 시설물이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구분되어 확인되었다. 일부 주거지는 화재로 폐기되면서 벽체로 사용된 판재와 가구 부재들이 고스란히 출토됨으로써 당시 가옥구조를 복원하는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주거지의 내부에는 대부분 부뚜막이 시설되어 있으며, 비교적 이른 시기의 주거지에서는 점토띠식 노지가 확인된다. 부뚜막은 평면형태를 기준으로 ‘11자형’과 ‘八자형’으로 구분되며, 부뚜막내의 지각은 석재를 사용한 것 보다 토기를 엎어놓은 것이 주를 이룬다. 특히 부뚜막의 아궁이 부분은 재래의 점토띠식 노지와 동일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재래의 토착민이 상용(常用)하던 노지에서 부뚜막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주거지와 수혈에서는 각종 토기류와 금속유물, 유리제품, 곡물 등이 확인되었다. 토기류는  경질무문토기에 비하여 각종 타날문토기가 압도적으로 출토되고 있으며 조사완료 후 유물   복원과정을 거치면 기종의 판별이 명확해 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확인된 토기류는 심발형토기·장란형토기·대호 등이 있으며, 경질무문토기류는 외반구연옹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편 주거지와 폐기장으로 추정되는 일부 구덩이에서는 인골 편과 짐승 뼈가 출토되기도 하였으며, 팥으로 추정되는 곡물들도 출토되었다.

특히 백제 한성기의 유물(광구단경호·무뉴식뚜껑·흑색마연토기·직구호류·고배 등)이   다량으로 출토된 점은 백제 전기의 동계(東界)를 획정(劃定)할 수 있는 결정적 자료라 할 수 있으며, 한성에서 유행하던 중앙 양식의 토기가 지방으로 전파되는 확산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획기적인 자료로 판단된다.

 

한편 Ⅱ-철58호 주거지에서는 흑색마연토기 편이 수습되었다. 이 흑색마연토기는 표면과 음각된  부분에 옻칠이 보이는데 현미경 관찰을 통하여 토기의 태토 내부에 침투된 칠과 두께가 얇은 흑색 칠층이 함께 확인되었다. 흑색 칠층은 두께가 얇은 것으로 보아 입자가 작은 그을음(연매)을 옻칠에 혼합하여 칠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당시 도태(토기) 칠기의 제작과정에서 칠의 부착력을 높이기 위해 묽은 칠을 사용하여 태토 내부로 침투되도록 초칠을 하였고, 그 위에 흑색안료가 혼합된 칠(상칠)을 얇게 덧칠한 것으로 보인다.

 

금속유물로는 철제괭이·U자형삽날·철겸 등 농구류와 철부·철촉 등의 무기류가 출토되었으며, 이밖에도 등자·재갈 등의 마구류가 확인되었다. 특히 마구류와 철제 찰갑편이 출토된 것은  한반도 중부지방에서는 발견 예가 드문 경우로, 북방으로부터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반도 마구류 및 갑옷류의 기원과 전파 과정을 연구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러한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된 것으로부터, 원천리 취락의 성격을 일반적인 생활유적으로서 뿐만 아니라 당시 활발한 대외 정복활동을 수행했던 군사적인 성격의 복합 유적으로도 판단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되고 있다.

 

기타 유물로 유리제 이당(耳?)·구슬·관옥 등이 출토되었으며, 금동제 이식도 출토되었다. 이러한 장신구들은 원천리 취락 지배층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그동안 백제 한성기의 중요한 위신재로 평가되었던 흑색마연토기의 존재와 함께 백제 중앙에서 파견된 지배자가 직접 지니고 온 것이나 중앙으로부터 사여받은 품격높은 물건들일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상 주거지의 구조와 출토 유물들을 종합해 보면, 원천리 유적은 기원후 3세기경부터 4세기경을 중심으로 영위되었던 마을로 판단되며, 특히 백제가 한성시대 초기에 북한강 상류지역까지   진출하여 직접적인 지배 영역으로 삼았음을 보여주는 대단위 취락이라고 할 수 있다.

 

발굴제도과 신희권 042-481-4947

 |                                                                        등록일 : 2010.11.03

 

 

 

한성백제 땅, 동북쪽 경계는 화천까지

[중앙일보] 입력 2010.11.04 00:22 / 수정 2010.11.04 00:29

3~4세기 추정 유적지 첫 확인
흑색마연토기 등 유물 출토

 

 

 

강원도 화천에서 3~4세기 백제 동북지역 최전선 국경마을로 추정되는 대단위 취락유적이 확인됐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강원도 화천군 원천리 ‘4대강 살리기 북한강 사업구간 12공구’ 내 연꽃단지 조성지 1만7500㎡ 현장 발굴 설명회를 3일 열었다.

예맥문화재연구원(원장 정연우)이 5월 말부터 발굴을 시작해 60% 가량 조사를 마쳤다. 현재 철기~삼국시대 주거지 약 120기, 청동기시대 주거지 23기, 수혈(구덩이) 약 120기 등 265기의 유구가 발굴됐다.

 이번 유적에선 광구단경호(입구가 넓고 길이가 짧은 토기), 무뉴식(꼭지가 없는)뚜껑, 흑색마연토기 등 한성백제기(BC 18~AD 475) 토기가 출토됐다. 이들 토기는 한성백제 도읍지인 풍납토성 중심부, 석촌동 고분군 등 백제 왕성이나 왕릉에서 출토된 바 있다.

특히 그을음을 섞은 옻칠을 해 검은색을 낸 흑색마연토기는 생활용기가 아닌 의례용기다. 정연우 원장은 “한성백제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지배층이 직접 가지고 왔거나, 토착 지배자가 하사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강원도 화천군 원천리 한성백제 유적지에서 출토된 각종 토기. [예맥문화재연구원 제공]
 『삼국사기』에는 온조왕 시대인 기원전 6년 백제의 권역이 ‘동으로 주양(朱壤)에 이른다’고 적혀 있다. ‘주양’은 학계에서 춘천 혹은 철원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이를 입증할 유적은 발굴된 바 없다.

문화재청 신희권 학예연구관은 “백제 초기 동쪽 경계가 철원보다 동쪽에 위치한 화천에까지 이르렀음을 입증하는 고고학적 증거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북한강 상류 강원도 지역에서 학술적으로 의미 있는 삼국시대 유적이 발굴된 바는 없다. 신 연구관은 “강원도 일대에선 삼한시대~백제 초기 유적이 나오지 않아 고고학계에선 이 지역엔 철기시대만 있었던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이 밖에 철제 괭이U자형 삽날 등 농기구, 철제 화살촉·창 등의 무기류, 마갑(말의 갑옷) 조각, 재갈과 등자(발걸이) 등도 출토됐다. 마구류는 남부지방에선 출토된 바 있지만 중부지방에선 발굴된 바 없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초기 낙랑·말갈과 전투를 벌였다는 기사가 수십 차례 나온다.

예맥문화재연구원 심재연 책임연구원은 “철제 무기류는 최근 20년 간 강원도에서 출토된 모든 유물을 합친 양보다 많을 정도”라며 “평소 농사를 짓다가도 전쟁이 나면 싸워야 했던 접경지대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로 연꽃단지 조성 계획은 백지화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올해 안에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유적의 보존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화천=이경희 기자

 

 

 

 

 

화천 백제마을은 군사전초기지
주거지서 무기류 다량 출토…초기 백제영토 확대해야
기사입력 2010.11.03 17:07:21  
강원도 화천댐과 춘천댐 사이 강변 충적지인 `원천리 유적지`.

올해 초까지 경작지였던 이곳은 지난 3월 3~4세기 한성백제로 추정되는 집터 120기가 발견되면서 올해 고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지역이 됐다. 북한강 상류지역에서 백제 취락 마을이 대규모로 발견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3일 찾은 이 유적지는 발굴작업이 후반부로 접어들어 마을 성격을 보다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수장급이 살았던 집으로 추정되는 `2지구 1호 주거지`는 규모가 가장 컸으며 검게 그은 판자벽과 부뚜막이 눈에 띄었다. 다른 주거지 안에는 `등자`와 `재갈`을 비롯한 마구류와 `화살촉` 등 무기류가 보관돼 있었다.

말 발걸이인 `등자`가 발견된 것은 중부지역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신희권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연구관은 "이 유적지에서는 무기류 100여 점이 출토됐다"며 "평화로운 농경 마을이 아니라 국경지역 교전이 빈번했던 군사 전초지 성격이 짙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기록에 따르면 한성백제 시절 말갈족은 수확기 때 노략질을 많이 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한성백제기를 특징짓는 흑색마연토기와 직구호류가 다량으로 출토됐다. 토기 표면 흑색에 옻칠을 한 `흑색마연토기`는 일반 생활용기보다는 특수 의례용기로 분류된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예맥문화재연구원 정연우 원장은 이날 현장설명회에 참석해 "이곳은 4대강(북한강) 살리기 사업 구간에 포함돼 연꽃단지와 자전거길 조성이 예정됐지만 올해 초부터 강변 충적대지 1만7500㎡를 발굴 조사한 결과 3~4세기 한성백제 취락지가 확실한 주거지와 유물이 출토됐다"고 설명했다.

발굴이 60% 진행된 결과 이곳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23기, 석관묘 1기, 철기ㆍ삼국시대 주거지 약 120기, 수혈유구 약 120기 등 유구 265기가 확인됐다.

이번 발굴이 의미를 갖는 것은 백제 건국 초기 동쪽 영역을 춘천보다 북쪽인 화천까지 늘려 잡을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백제 영역 경계는 문헌상으로 주양(현재 춘천)설이 일반적이었지만 이마저도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다.

백제시대 주거지는 공중에서 내려다본 형태가 한자 `철(凸)`자와 `여(呂)`자를 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呂`자형 집터 중 주된 생활공간인 큰방은 평면 형태가 대부분 육각형이었으며 그 뒤편 중앙에는 거의 예외 없이 부뚜막을 설치한 전형적인 백제 주거지 형태를 띤 것으로 나타났다.

[화천 = 이향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