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흔적따라

풍납토성 백제초기 초석 건물지의 실체를 밝혀내다 

wowjenny 2011. 6. 18. 17:41

 

제목 풍납토성 백제초기 초석 건물지의 실체를 밝혀내다
작성자 문화재청
작성일 2011-06-17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영원)는 한성백제시대(漢城百濟時代, B.C.18~A.D. 475)의 도성으로 알려진 풍납토성(사적 제11호) 구(舊) 미래마을부지(풍납동 197번지일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발굴조사로 인근 경당지구의 제의시설로 추정되는 건물지와 평면상 유사한 여(呂)자형 건물지가 확인됐고, 기단을 갖춘 건물지에서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던 기둥 시설방식이 확인됐다.

 

  특히, 기단을 갖춘 건물지에서는 네 모서리에 터파기를 한 후 바닥에 초석을 안치하고 그 위로 기둥을 세우는 방식이 중국 북위 영녕사 목탑지에서 확인된 기둥 시설방식과 유사해 도성 내 세워진 위계가 높은 건물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와 더불어 건물지와 관련된 보도시설도 주변에서 일부 확인된다.

 

  이들 건물지는 2010년도 발굴조사 과정에서 처음 확인되었으나 이번 조사를 통해 건물지의 규모 및 축조기법을 보다 명확히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확인된 건물지는 조사지역 중 구지형이 가장 높은 동편에 위치하며, 呂자형 건물지 내 북서편에 기단을 갖춘 건물지가 서로 상하로 중복되어 있다. 이 중 축조시기가 빠른 하층 건물지는 돌출된 출입구가 설치된 呂자형의 건물지이다. 평면 큰방 규모는 14.4×16m이며, 출입구를 포함하면 남북길이가 25m에 달한다. 건물의 대지는 약 2m 가까이 흙을 파낸 뒤 다시 흙을 채워 하부를 단단하게 하였으며 적심시설은 강돌을 이용했다.

 

  이보다 후대에 축조되어 상층에 위치하는 기단식 건물지는 동편에서만 기단석이 확인되는데 대략 4~5단까지 돌을 쌓아 올리고, 내부는 흙으로 켜켜이 다져서 채워 넣었다. 양 모서리 사이에는 기단석 바로 바깥쪽에 붙어 굴립주 흔적이 확인된다. 이들 건물지는 출토유물로 미루어 A.D. 4~5C경 축조 및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기단을 갖춘 건물지 외부에는 이와 관련된 수 천점의 기와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경당지구에서 출토된 바 있는 연화문수막새를 비롯해 기존에는 확인되지 않았던 수면문과 전문 등 다양한 문양의 수막새가 출토되었고, 이번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한성백제시대 완형의 수막새가 확인됐다.

 

  풍납토성 舊 미래마을부지는 2000년·2003년 시굴조사를 거쳐 2004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추진되어 왔다. 그동안 조사과정에서 한성백제시대 최대 규모의 육각형 건물지와 도로시설 등 530여기의 유구가 확인된 바 있다. 또한 발굴조사 과정에서 수 만점의 백제토기 및 수막새 등의 기와와 함께 연판문 청자 및 전문도기 등 중국제 유물이 다량 출토되어 풍납토성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게 됐다. 2011년까지 이번 발굴조사를 끝으로 향후 이 부지는 보존·정비되어 사적공원 등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임승경 042-860-9172
                                      소재윤 042-860-9183

 

 

 

 

 

 

 

 


 

 

 

 

풍납토성서 대형 呂자형ㆍ기단식 건물터 확인

 

呂자형 건물(전체)과 기단식 건물(화면 오른쪽 상단)

길이 25m에 기둥 받침돌..짐승무늬 수막새 출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한성도읍기 백제 왕성 터임이 확실시되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에서 길이 25m에 이르는 평면 呂(여)자형 적심(積心) 건물터와 돌로 기단을 쌓고 기둥 받침돌을 쓴 기와 건물터가 확인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풍납토성 내부구역 중 풍납동 197번지 일대 옛 미래마을부지를 발굴조사한 결과 인접 경당지구에서 확인된 추정 제의시설인 44호 건물터와 평면 형태가 매우 유사한 초대형 呂자형 건물터를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또 그 내부에서 나중에 만든 기단 갖춤 건물터도 찾아냈다.

 이 중 기단 갖춤 건물터에서는 네 모서리에 터파기를 한 다음 바닥에다 초석(礎石)을 안치하고 그 위로 나무기둥을 세운 흔적이 발견됐다.

  

기단식 건물. 굵게 칠한 붉은원이 초석 자리.



풍납토성에서 기둥 받침돌인 초석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단은 "이와 같은 기둥 세우기 방식은 북위(北魏)시대 영녕사(永寧寺)라는 사찰의 목탑터(허난성 뤄양 소재)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위계가 높은 건물이었음을 추정케 한다"고 말했다.

 이 건물터 주변에서는 수천 점에 달하는 기와 유물이 확인됐는가 하면 건물과 관련된 보도시설도 주변 일부 구간에서 확인됐다.

 이 건물터에서 기단은 4~5단 정도로 돌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며 내부는 흙을 켜켜이 다져서 채워 넣는 이른바 판축(板築)기법을 쓴 것으로 밝혀졌다. 기단 바로 바깥쪽을 따라서 일정한 구간마다 땅에 그대로 박아 세운 나무기둥인 굴립주(掘立株) 흔적이 확인됐다.

기와 유물 중에는 경당지구에서 출토된 적 있는 연화문(연꽃무늬) 수막새를 비롯해 수면문(獸面文. 짐승얼굴 무늬)과 전문(錢文. 동전무늬) 등 다양한 문양을 넣은 수막새가 출토됐다. 특히 이번 조사 결과 처음으로 한성백제시대 완형 수막새가 확인됐다.

  

수면문 수막새



출토 유물로 볼 때 이 건물은 4~5세기경 만들어 사용된 것으로 조사단은 추정했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평면 형태가 한자 呂자와 흡사해 呂자형이라 일컫는 건물터는 출입구 시설을 제외한 큰방 규모가 14.4×16m에 달하며, 출입구를 포함하면 남북길이가 25m에 이르는 초대형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이 건물터는 약 2m 정도 대지를 파낸 뒤 다시 흙을 채워 아래쪽을 단단히 했다.

앞서 이 건물터에서는 강돌을 쌓은 적심이 확인된 바 있다. 적심이란 기둥 받침돌 밑을 파고서 흙이나 자갈 등을 채운 시설을 말한다.

옛 미래마을부지에서는 2000년과 2003년 시굴조사를 거쳐 2004년 이후 본격 발굴조사를 추진한 결과 한성시대 최대 규모인 육각형 건물터와 도로시설 등 530여 기에 달하는 각종 유구(遺構)와 무수한 유물이 확인됐다.

연구소는 올해 이 지역 조사를 완료하며, 현장은 사적공원 등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보도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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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shik@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6/17 10:52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