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흔적따라

한반도와 연계된 홍산 문명

wowjenny 2011. 1. 26. 19:01

 

한반도와 연계된 홍산 문명 한국인의 고향, ‘신비의 왕국’ 찾았다(12) 2007년 12월 19일(수)

(지난 회에 이어 계속)

2) 다양한 옥룡

▲ 안도 출토 조가비 팔찌. 
홍산지역에서 발견되는 옥룡은 옥저룡 대흑룡 대청룡 옥조룡 대홍룡 소청룡 황색포장룡(黃色包漿龍)과 변색룡 등 이십여 종으로 구분된다. 다양한 형상의 ‘패옥형 옥룡’들도 발견되는데 이는 돼지가 아니라 곰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동그랗게 말린 몸체와 뭉툭한 주둥이를 갖고 있으며 갈기가 없고 아래위로 교차된 송곳니를 표현하고 있다. 커다란 눈과 가운데 뚫린 구멍이 인상적인 이 작은 옥은 일반적으로 시신의 가슴에 놓여 있다.

홍산문화에서 출토된 옥기 가운데 동물의 머리를 양쪽 끝에 조각한 쌍수수삼공기(雙獸首三孔器)가 있는데 여기에 조각된 동물 머리도 곰으로 추정한다. 이들 다양한 옥들은 홍산문화의 특징으로 장식 또는 상징적이거나 제례적인 가치를 지녔던 것으로 추정한다.

조형이 간단하고 질박하며 옥을 갈아서 홈을 만들기도 했고 옥지가 숨겨지는 양문과 사면능선은 만지면 느껴지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특히 쌍안천동단면성공법(雙眼穿洞單面成孔法)은 그 공예의 독특한 특징이다.

이들은 대부분 돌무덤의 중앙에 있는 돌널무덤에서 출토된다. 시신의 각 부위에는 많은 옥기들이 발굴되는데 지배자의 돌널무덤에서는 옥기가 많이 발견된다. 우하량 제2지점 1호 돌무덤에서는 20점의 옥기가 발견됐다. 이것은 홍산문화 무덤 한 곳에서 나온 옥기 숫자 중에서 최다이다. 그는 짐승 얼굴 모양의 옥패(玉牌), 옥거북이, 옥베개 등으로 치장했다. 이는 피장자의 신분에 따라 부장품에 차별이 있다는 것으로 당시에 이미 신분이 나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옥기의 정확한 기능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의 옥의 중요성 때문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옥은 단순한 장식품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설명이다.

우하량 제5지점 중심대묘에서 남성 1구의 인골과 7점의 옥기가 출토됐는데 양 귀에 옥벽(玉璧), 즉 둥근 옥이 양 귀 밑에 가지런히 놓여 있고, 가슴팍엔 구름형 옥장식이 놓여 있다. 또한 그 아래 말발굽형 옥기가 있으며, 오른팔엔 옥팔찌가 놓여 있다. 학자들은 양손에 옥거북이가 쥐어져 있는 것을 볼 때 이 무덤의 주인공을 ‘무인(巫人)’이라고 추정한다. 여기에서의 무인은 현대 개념의 무당이 아니라 신과 통하는 독점자로서 교주이면서도 왕과 같은 신분을 뜻한다.

뉴허량 유적군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제16지점의 중심대묘에도 성인 남성이 묻혀 있는데 이 묘의 주인공도 5지점 중심대묘와 마찬가지로 신(神)과 소통할 권리를 독점한 무인(巫人)으로 추정한다. 특히 이곳에서는 옥으로 만든 무인인형과 봉황이 특징적이다.

놀라운 것은 옥으로 만든 비파형검도 발견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학자들은 중국의 청동검과는 전혀 다른 비파형 동검의 비파 형태가 어떤 연유로 동이의 동검에 나타나는가를 의아해했는데 홍산문화의 옥기에서 비파형태가 발견됨으로써 비파형태는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홍산문화 시기에도 홍산인들에게 상당히 각인돼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우하량에서 발견된 비파형 목검. 
금속제 공구가 전혀 없었던 신석기 시대에 옥을 뚫는다는 것은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대만의 장경국은 홍산 옥기의 주요 모티브의 하나인 옥룡의 경우 구멍을 뚫는 작업을 고대인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실로 재현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1.7센티미터 두께의 옥에 모래를 뿌려가면서 대나무(외경 9.6mm, 내경 5.4mm)를 돌려서 구멍을 뚫는데 작업시간만 31시간이 걸린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홍산문화 지역에서 엄청나게 많은 옥기가 발견된 것은 직업의 분화와 전문 장인들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3) 한반도와 연계되는 옥귀걸이

앞의 홍산문화지역에서 발견된 옥은 적봉시에서 동쪽으로 45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압록강에 인접한 요령성 수암(岫岩)에서 출토되는 ’수암옥‘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흥륭와문화 시대인 기원전 6000년경에 이미 만주 벌판 서쪽과 동쪽이 교류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결상이식은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선사유적지(사적 426호)에서 ‘국내 최초의 신석기시대 옥 귀고리’가 발견돼 더욱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문암리 유적은 그동안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유적으로 알려진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유적(기원전 6000~기원전 3000년)과 비슷하거나 보다 오래된 것으로 홍산문화와 시기가 엇물린다.

특히 이들 유적지에서 초기 신석기 문화의 양대토기로 인식하는 덧띠무늬 토기와 빗살무늬 토기가 함께 출토됐다. 신희권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관은 사해와 흥륭와에서 발견된 토기와 문양을 그려넣은 기법이나 토기의 기형이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이들 지역과의 연계가 더욱 확연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2007년 한국에서 보다 놀라운 발표가 있었다.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추진하는 금오도에서 안도 간 연도교 가설공사를 추진하던 중 안도패총이 발견돼 2천950제곱미터에 대한 긴급구제 발굴조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안도패총은 1992년 국립광주박물관이 실시한 남해도서 지표조사에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당시 조사에서 남해안 신석기문화의 특징인 두립문토기, 압날문토기, 압인문토기, 융기문토기, 지두문토기, 주칠토기, 무문양토기 등과 원거리 교역을 보여주는 흑요석 등 특징적인 유물들이 채집돼 유적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당시 밭으로 개간돼 경작이 이루어지면서 패각층의 상당 부분이 훼손돼 다량의 유물들이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금오도와 안도를 연결하는 연도가설공사가 추진되면서 이 공사 구간 내의 패총에 대해 국립광주박물관이 긴급구제발굴조사를 실시한 것이다.

▲ 우하량 제2지점1호 돌무덤 
안도는 여수시에서 동남쪽으로 약 35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지리적으로는 동경 127도, 북위 34도에 위치하며 동도와 서도의 작은 섬으로 연결돼 있다. 안도패총(전남 여수시 남면 안도리 1313번지)은 안도리 마을의 서쪽에 해당하는 서도에 있으며 '섬의 형태가 기러기 모양 같다' 해서 기러기 안(雁) 자를 써 안호(雁號)라고 부르다가 '살기에 편안한 섬', '태풍 시 선박이 안전하게 피항할 수 있는 섬'이란 뜻으로 안도(安島)라 변경했다.

3개월에 걸친 긴급구제발굴조사를 통해 패각층 내부와 기원전 4천년경으로 올라가는 신석기시대 구지표면 상층에서 토기류, 석기류, 골각기류 등 약 500여 점의 유물과 함께 불 땐 자리 등이 출토됐다. 이 중에서 주목 받은 것은 몸체 정면을 하늘을 향해 나란히 눕힌 동시대 사람뼈(인골) 2구, 인골의 손에 찬 조개팔찌 5개, 목걸이 2점, 둥근고리(環形), 한쪽을 뚫은 결상이식이라는 옥귀고리이다.

대퇴부를 기준으로 추정하는 신장은 남자일 경우 165㎝, 여자일 경우에는 159㎝ 가량으로 비정됐다. 여성으로 보이는 인골의 오른쪽 팔에는 조가비를 톱니바퀴 모양으로 잘 다듬은 팔찌 5개가 끼워져 있었다. 또 왼쪽 사람의 오른팔이 오른쪽 사람의 왼쪽 팔 위에 놓여 있었다.

조가비 팔찌를 착용한 신석기시대 인골은 경남 통영 상노대도 산등(山登)패총에서 팔찌 3개를 찬 예가 보고됐으나 인골 팔목에서 조가비 팔찌 5개를 착용한 경우는 최초이며 인골의 연대도 1000~2000년 정도 앞선다.

팔찌는 한반도와 일본을 연계하는 중요한 유물로 인식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신석기시대 팔찌 착용은 일본 학계에서는 성인식 문화와 연결 짓는데 일본열도 중 규슈지역에서는 10개 이상 되는 팔찌를 패용한 인골이 합장된 예가 다수 보고됐다. 특히 후쿠오카현 야마카(山鹿) 패총에서는 10~20개나 되는 팔찌를 착용한 합장 인골 3구가 보고되기도 했다. 이들 일본 열도 신석기시대 팔찌는 대부분 투박조개를 갈아 만들었는데 안도패총 인골이 착용한 팔찌 또한 투박조개로 한반도와 일본의 연계성을 보여주는 증거품으로도 이해된다.

▲ 20점의 옥기가 발견되었으며 홍산문화 무덤 한 곳에서 나온 옥기 숫자 중에서 최다이다. 
안도패총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둥근고리(環形)에 한쪽을 뚫은 결상이식이라는 옥귀고리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로 간주한다. 그런데 안도에서 외폭 기준 지름 3㎝이며 가운데 뚫린 구멍 지름 1.4㎝의 결상이식이 발견됐는데 이는 중부 이남지역에서 유일하게 출토된 결상이식이다. 물론 안도패총에서 발견된 결상이식 1점의 재료는 도석제로 산지는 대체로 해남 옥매산, 성산 광산, 완도 노화도 등지로 추정하므로 앞에서 설명한 수암옥은 아닌 것으로 추정한다.

우하량 지역에서 꽃피우고 있던 ‘신비의 왕국’ 또는 ‘여왕국’을 대표하는 결상이식과 같은 형태의 결상이식이 한반도 중부인 강원도를 비롯해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됐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당대의 홍산문화가 한반도 전 지역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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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루트를 찾아서](11) 뉴허량의 옥기묘', 이기환, 경향신문, 2007.12.15

이종호 과학저술가 | mystery123@korea.com

저작권자 2007.12.19 ⓒ Science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