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흔적따라

풍납토성 ‘해자’바닥 추정 자갈층 발견

wowjenny 2011. 1. 26. 18:53

 

풍납토성 ‘해자’바닥 추정 자갈층 발견


△ 풍납토성 서남쪽 성벽터 바깥의 삼표산업 새 사옥 신축터를 발굴한 결과 드러난 거대한 해자의 흔적.

고대 국가 지배자들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예외없이 도성 성벽 주위에 ‘해자’라고 불리는 인공연못을 팠다. 그러나 1~5세기 초기 백제 도읍터로 추정되는 서울 풍납토성은 그동안 이런 상식에서 예외였다. 왕성터에 걸맞은 유물들을 쏟아냈지만 필수시설인 해자 흔적은 이상하리만큼 나오지 않았다.

이 해묵은 의문이 최근에야 풀렸다. 지난해 11월 성벽 서남쪽 끝자락 바깥의 삼표산업 사옥 신축터에서 해자의 진흙층이 확인된 데 이어 지난달 대규모 해자의 바닥시설인 자갈무더기가 발견되었다. 1999년 동벽 발굴 결과 높이 9m, 너비 50m의 거대 성벽구조가 드러나 세간을 놀라게 한 이 유적이 4년 만에 다시 큰 선물을 선사한 것이다.

지난 1월부터 이 지역을 발굴해온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12일 오전 문화재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설명회를 열어 해자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소 쪽은 “지난달 말 사옥터 내 2곳을 발굴한 결과, 지하 10m 아래에서 성벽 끝자락 자취와 해자의 바닥시설로 추정되는 너비 24m 정도의 질서정연한 돌무더기층(석렬)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굵고 작은 자갈들이 정연하게 깔린 돌무더기층은 성벽 끝자락에서부터 비스듬하게 뻗어내려가 펄층 속으로 이어지는데 끝부분이 파악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성벽 자락과 연결된 위쪽 4m 정도 부위는 누런 색깔인 데 비해 아래쪽은 펄 색깔인 회색빛을 띠어 물에 잠겼던 흔적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신창수 유적조사연구실장은 “자갈을 깔아 한강 본류나 지류가 이쪽으로 흐르게끔 유도한 흔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로 풍납토성이 왕성일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근거가 추가로 확보됐다. 너비가 24m나 되는 거대한 자갈층을 정성껏 깐 해자 바닥시설은 폭 50여m, 높이 10여m로 추정되는 바로 옆의 거대 성벽과 마찬가지로 왕성 건설에 필요한 대규모 인력동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연구소는 99년 동벽을 파내려갔을 때도 성벽 아랫부분에서 폭 5~6m 정도의 자갈 무더기를 발견했으나 해자를 입증하는 펄층 발견에는 실패한 바 있어 이번 발견은 자못 의미가 크다.

성벽을 쌓은 시기에 얽힌 논란을 부추기는 토기 조각들도 성벽 안에서 나왔다. 토기 조각들이 이른바 원삼국 토기로 알려진 기원전 1세기~기원후 2세기 무늬없는 토기와 두들김무늬(타날문) 토기류뿐이어서 성벽을 쌓은 시점이 늦어도 3세기 전후이며 더욱 올릴 수도 있다는 추론이 가능해졌다. 강단학계에서는 외부 흙을 옮겨 쌓았기 때문에 내부 토기 조각들의 연대를 쌓은 시기와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를 보여왔다.

그러나 성벽 중간층에서 출토된 큰 항아리, 바리 모양 토기류 들은 거꾸로 세워졌거나 모로 눕혀진 채 나와 인부들이 작업 때 넣었을 공산이 크다. 신희권 학예사는 이를 근거로 “풍납토성 1기 때인 1~2세기 때 성이 완공 단계에 들어섰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강력한 동원능력을 지닌 백제 왕국이 3세기 이후 등장한다는 고대사 통설의 해체를 겨냥한 것으로, 기존 학계와의 불꽃 튀는 고증논쟁을 예고한다.

한편, 문화재위원회는 이달 말 발굴 현장을 사적으로 지정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어 토성 외부의 무분별한 재개발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노형석 기자  2003.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