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흔적따라

임진강 유역에 2000년 전 ‘대규모 주택단지’(연천군 강내리)

wowjenny 2011. 1. 26. 20:40

임진강 유역에 2000년 전 ‘대규모 주택단지’

연천 | 글·사진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ㆍ수몰될 군남댐 건설지역 문화재 발굴 현장
ㆍ초기백제 초대형 주거지·유물 잇단 발견
ㆍ‘원삼국’ 연구에 중요… 발굴시한 6개월뿐

북한 황강댐에 대한 대응댐으로 건설 중인 경기 연천 군남홍수조절댐건설로 인해 수몰될 예정인 임진강 유역에서 삼국시대 초기, 즉 기원후~3세기로 추정되는 주거지가 잇달아 쏟아지고 있다. 임진강 유역에서 삼국시대(백제) 초기의 주거지가 대거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같은 사실은 경향신문이 지난 18일 남방한계선 이남에서 경기 연천 왕징면 강내리에 건설 중인 군남홍수조절지 사이의 임진강 유역 수몰 예정지구를 답사한 결과 밝혀졌다.

특히 군남댐이 건설 중인 강내리 유역 충적대지에서는 고려문화재연구원의 발굴이 막 시작됐음에도 무려 47기의 여(呂)자형과 철(凸)자형 주거지를 비롯해 논밭 경작유구 등이 노출됐다. 유물도 경질무문토기류가 쏟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는 길이 17~18m, 폭 10m가량인 170~180㎡(50~55평) 규모의 초대형 여(呂)자형 주거지를 비롯해 60㎡(10m×6m), 42㎡(7m×6m) 등 철(凸)자형 주거지들이 보였다. 초대형 여(呂)자형 주거지는 지금까지 백제의 지방영역에서 확인된 최대 건물지(포천 자작리)에 버금가는 규모이다. 이들 주거지에서는 이른바 고래(구들장 밑으로 나있는 길)가 벽체에 따라 이어지는 ‘페치카형 온돌 구조’가 확인됐다. 막 발굴을 시작한 3기의 주거지는 남향으로 같은 방향을 유지했다. 발굴을 책임지는 이왕호 고려문화재연구원 조사팀장은 “발굴은 이제 시작단계”라면서 “주거지 규모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 팀장은 “특히 불에 타 무너진 채 남아 있는 소토지가 20기 정도 보인다”며 “이 유구에 대한 정밀조사를 벌이면 더욱 풍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댐건설 현장은 최근 북한 황강댐 방류로 강내리~삼곶리를 잇는 가교가 끊어진 상태. 이 때문에 답사팀은 북삼리로 우회하여 민통선을 지나 논길을 한참 달리고 개천을 건넌 뒤에야 닿을 수 있었다. 현장은 임진강의 절경이 바라다보이는 높은 충적대지에 자리잡고 있다.

입지조건과 노출된 주거지의 윤곽만 보더라도 가히 2000년 전의 ‘전원주택단지’라 일컬을 만하다.

이런 주거지는 이보다 상류인 중면 삼곶리에서도 확인된다. 역시 수몰예정지구인 삼곶리 충적대지를 조사 중인 한양대문화재연구소는 지난 18일 지도위원회를 열어 “시굴조사 결과 3기의 여(呂)자 혹은 철(凸)자형 주거지 윤곽이 노출됐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연질무문토기 완형 4점과 다량의 불탄 목재, 그리고 온돌시설로 여겨지는 석렬 등이 확인됐다. 지도위원회에 참석한 지건길 문화재위원과 배기동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은 “이제 시굴조사에 불과하고 발굴면적이 26만㎡인 점을 감안하면 본격발굴에 나설 경우 대단위 주거지가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 밖에도 중면 합수리를 조사한 한울문화재연구원도 최근 철(凸)자형 혹은 여(呂)자형 주거지 등 청동기~삼국시대 초기(원삼국) 유적을 확인했다. 이날 함께 현장을 둘러본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 학예팀장은 “이번에 잇달아 확인되는 주거지 형태는 서울 미사리 등 한강과 가평 등 북한강에서 똑같이 발견됐지만 임진강 유역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신희권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관은 “그동안 공백으로 남았던 초기 백제 시대의 임진강 문화권을 복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이로써 한강~한탄강~임진강을 아우르는 초기 백제 문화상의 밑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댐공사 공기를 위해 2010년 4월까지 끝내야 하는 발굴시한이다.

발굴기관들 사이에서는 발굴 초기부터 쏟아지는 백제 초기 주거지 유적과 관련, 다소 당황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이와 관련, 지건길 문화재위원은 “발굴을 더 해봐야 알겠지만 시한에 쫓겨 발굴을 졸속으로 끝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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