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흔적따라

국보295호 나주 신촌리 금동관 '95년 만에 귀향'

wowjenny 2013. 10. 23. 23:49

국보295호 나주 신촌리 금동관 '95년 만에 귀향'
등록 일시 [2013-10-22 11:10:58]
내달 22일 '천년 목사골 나주 특별전'서 일반 공개

【나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일제강점기인 지난 1917년 전남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9호분에서 출토된 '국보295호 신촌리 금동관'이 긴 여정을 마치고 95년만에 고향땅 나주로 영구히 돌아왔다.

나주로 귀향한 보물 295호 금동관은 원래 출토지 인근에 건립된 국립나주박물관 품으로 옮겨져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22일 국립나주박물관에 따르면 서울 중앙박물관을 거쳐 광주박물관에서 보관 전시 중이던 국보 295호 신촌리 금동관이 지난 21일 나주박물관 수장고에 입고됐다.

스타급 문화재인 신촌리 금동관은 내달 22일 나주박물관 개관일부터 내년 2월16일까지 열리는 '천년 목사골 나주 특별전' 일정에 맞춰 수장고에서 전시실로 옮겨질 예정이다.

금동관 외에도 특별전을 앞두고 광주박물관 등에 보관 전시 중이던 나주지역 연관 유물 200여 점이 나주박물관으로 옮겨지고 있는 중이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본관이 나주인 고려시대 명장 정지(1347∼1391)의 갑옷(보물 제336호)과 임진왜란 당시 나주성을 지키다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뒤 탈출한 노인(魯認·1566∼1622)이 쓴 '노인금계일기'(보물 제311호)가 있다.

또 나주시 안창동 미천서원에 배향된 남인의 영수이자 눈썹이 굵고 길기로 유명했던 미수 허목(1595∼1682)의 초상화(보물 제1509호)도 특별전을 위해 나주박물관으로 옮겨지고 있다.

한편 나주박물관으로 옮겨진 금동관은 25.5㎝ 높이에 외관과 내관으로 각각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이 금동관은 옹관고분에서 출토된 희귀성과 관과 관모가 함께 발견돼 당시 영산강유역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인정돼 지난 1997년 9월2일 국보 295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신촌리 금동관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백제 것이냐 아니면 영산강유역에서 독자적 정치세력을 형성하며 이 일대를 지배했던 '마한'것이냐를 놓고 논란이 많은 문화재 중 하나이다.

흔히 백제의 금동관과 관모는 한성백제시기 중에서도 4c말~5c에 나타나는 양식이다.

그러나 나주 신촌리 금동관을 제외하고 백제시대 금동관과 관모는 모두 내관만 출토된 바 있다. 또 백제 금동관은 금동관 끝에 수발형 장식이 달려있는 것이 특징이나 신촌리 금동관에는 수발형 장식이 없다.

이 같은 점에서 백제시대 것이 아닌 '마한'에서 만들었다는 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lcw@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