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기원, `비옥한 초승달지대' 여러 곳
(서울=연합뉴스) 이영임 기자= 인류 최초의 농업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불리는 유프라테스·티그리스강 유역 여러 곳에서 동시에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발견됐다고 사이언스 데일리와 NBC 뉴스가 5일 보도했다.
독일 튀빙겐 대학과 이란 고고연구센터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알려진 `비옥한 초승달 지대' 서부와 북부 지역 뿐 아니라 동쪽에 위치한 이란 자그로스 산맥의 산기슭 역시 고대 야생식물 작물화의 주요 시발점이었음을 발견했다고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지난 2009년과 2010년 이란 동부의 초가 골란 유적지에서 두께 8m의 1만1천700~9천800년 전 신석기 시대 퇴적층을 발굴했다.
토기가 들어 있지 않은 이 퇴적층에서는 석기와 사람·동물 형상, 뼈로 만든 도구, 동물 뼈 등이 발굴됐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근동 지역에서 토기 이전 신석기의 것으로는 가장 풍부한 불에 그을린 식물 잔해가 쏟아져 나왔다.
연구진은 초가 골란에서 나온 75개 분류군의 식물 잔해 3천 개를 분석한 결과 근동 지역의 농업은 하나의 중심 지역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났으며 `비옥한 초승달' 동부 지역 역시 야생식물의 작물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토기시대 이전 신석기 시대의 유적들은 비교적 짧은 점유 기간을 보여주고 있는데 반해 초가 골란에서 나온 긴 점유 기간을 순서대로 보여주고 있어 인류 생존의 새로운 패턴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재현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곳에서 가장 많이 나온 식물 종은 오늘날 농작물들의 야생 조상인 야생 보리와 염소풀속(屬), 렌즈콩이었으며 이밖에도 많은 종들이 1만1천700년 전 지층에서부터 발견됐다.
9천800년 전 퇴적층에서는 작물화한 에머 소맥(오늘날 주로 사료로 사용되는 소맥)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초가 골란 지역의 식물 잔해들은 야생 식물종을 재배한 장기간의 기록을 보여주는 희귀한 것으로서 2천년에 걸쳐 이 지역의 경제가 동식물을 작물화.가축화하는 쪽으로 바뀌어 마을 공동체 생활, 더 나아가 근동 지역의 문명을 일으키는 기초가 됐음을 말해준다고 밝혔다.
다양한 종류의 밀과 보리, 렌즈콩 등 식물과 가축화한 동물들은 이 지역 농민들이 점차 유라시아 서부 지역으로 퍼져 나갈 때 이들과 함께 이동했으며 차츰 수렵채집 사회를 대체하게 됐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새로 발견된 증거들은 농업이 발달하게 된 이유를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학자들은 초기 인류가 사냥과 채집만으로는 많은 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야생 식물의 작물화에 눈을 돌리게 됐을 것으로 추측해 왔다.
그러나 연구진은 초가 골란에서 발견된 식물 잔해들은 빙하기 후의 온난화 시기의 것으로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온난화로 동식물이 유례없이 풍요로워진 시기를 놓치지 않고 초기 인류는 야생 보리와 밀, 렌즈콩 등을 가지고 이런저런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인구가 많았던 세계 각지에서는 시체 매장과 축제 풍습 등 공동사회를 유지하는 장치가 시작됐으며 초기 인류가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농업을 통해 보다 안정된 사회, 더 나아가 보다 혁신적인 삶으로 발전하는 길로 접어들었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말했다.
이스라엘 일부 지역에서 초기 농업의 흔적이 발견된 1960년대부터 고고학자들은 터키와 시리아, 이라크에서도 고대 농업 사회의 증거들을 발견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7/06 11:36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