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흔적따라

‘우물 고고학’ 감춰진 고대 정신사 길어 올린다

wowjenny 2011. 8. 15. 02:11


 ‘우물 고고학’ 감춰진 고대 정신사 길어 올린다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인기 계기로 일반인 관심 커져
‘우물에 던져진 아이’ 등 통해 왕실 제의 연구 촉매 기대

《“1100여 년 전 신라 우물에서 왜 수많은 동물의 뼈가 나왔을까?” 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에서 8월 21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우물에 빠진 통일신라 동물들’을 계기로 ‘우물 고고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쓰레기 고고학과 화장실 고고학에 이어 우물 고고학이 고대 생활사 규명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는 1998년과 2000년 경주박물관 경내의 통일신라 우물 두 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선보인다. 당시 우물에선 두레박 토기 목간 동곳 등 530여 점이 출토됐다. 놀라운 것은 이 밖에 200여 종의 동물 뼈 2300여 점과 열 살쯤 된 아이의 뼈가 나왔다는 사실. 동물뼈는 포유류(개 고양이 소 말 사슴 멧돼지 토끼 두더지 쥐 등)와 조류(오리 까마귀 호랑지빠귀 새매 등), 파충류와 양서류(뱀 개구리 등), 어류(상어 복어 대구 숭어 민어 고등어 잉어 도미 등) 등 다양하다.》

 

 

①토기 두레박 등의 출토 모습.②열 살 정도 된 어린아이 뼈. 성별은 확인되지 않았다.③개 뼈. 우물엔 너덧 마리의 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④ 통일신라 우물의 단면.국립경주박물관



 
우물에서 이렇게 많은 종류의 동물 뼈가 나온 사례는 국내에 없다. 깊이 10m의 우물 바닥에서부터 높이 5m까지 동물과 아이, 토기 등을 넣은 뒤 5m 지점에 정(井)자 모양의 우물 상석(上石)을 덮고 흙으로 채운 것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은 당시 우물에서 중요한 왕실 제의가 열렸던 것으로 추정한다. 김현희 학예연구사는 “통일신라 말기 역병 등이 만연하는 혼란한 정세 속에서 안정된 생활과 깨끗한 물에 대한 기원을 담아 제의를 치른 것 같다”고 말했다. 우물을 발굴했던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지상의 생명체를 최대한 많이 넣어 신에게 봉헌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와 함께 “아이를 과연 어떻게 우물에 넣었을까”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아이 공양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닌가” 같은 궁금증도 이어지고 있다. 물에 빠져 죽은 아이를 건져 제사를 지낸 후 우물에 넣었거나 역병으로 죽은 아이를 우물에 넣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단정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물은 신라인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고대인에게 매우 신성한 대상이었다. 그렇다 보니 우물에서 다양한 제의가 이뤄졌다. 따라서 우물은 고대인의 정신세계를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2000년 이후 고대 우물 발굴이 늘었다. 경주 인용사터 우물, 안압지 동쪽 우물 등에서도 토기와 동물 뼈 등이 나왔다. 고대 사찰의 우물에서는 목이 잘린 불상도 다수 출토됐다. 이 교수는 “우물 속은 뻘층이어서 유물이 온전한 상태로 발굴된다. 왕실 관련 우물은 특히 중요한 역사적 행위에 대한 자료를 제공한다”며 우물 고고학의 의미를 설명했다.
2008년 서울 송파구의 백제 풍납토성 우물에서는 5세기 초 토기 215점이 무더기로 나왔다. 거의 모든 토기는 주둥이를 일부러 깨뜨렸고 차곡차곡 정렬해 매장했다. 토기는 한성(서울)뿐만 아니라 충청 전라 등 백제권 전역에서 사용한 것이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고고학계는 백제에 중대 사안이 발생해 풍납토성 우물에서 엄숙한 제의를 올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4세기 근초고왕의 마한 정복을 기념하기 위한 제의였다는 견해, 5세기 한성백제가 멸망하던 시기에 한성을 떠나면서 숙연하게 제의를 올리고 타임캡슐처럼 백제 전역의 토기를 묻었을 것이란 견해 등. 하지만 정설은 없다. 문화재청 발굴제도과의 신희권 학예연구관은 “고고학계는 풍납토성 우물과 토기의 정체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며 “우물은 실생활과 의례적 상징성을 모두 갖는 유적이어서 고고학적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